솔담모싯잎송편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영광굴비이야기 > 영광이야기 > 영광굴비이야기

법성포 영광굴비

유래

『택리지』에 “영광 법성포는 밀물 때가 되면 포구 바로 앞에까지 물이 돌아서 호수와 산이 아름답고, 민가의 집들이 빗살처럼 촘촘하여 사람들이 작은 서호(西湖)라고 부른다.
바다에 가까운 여러 고을은 모두 여기에다 창고를 설치하고 세미(稅米)를 거두었다가 배로 실어 나르는 장소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법성포는 옛날 진나라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곳이라고 전해오는 포구다.

고려 때 이자겸은 스스로 왕이 되려고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 척준경의 배반으로 실패하고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 그때 이자겸은 칠산 바다에서 삼태기로 건질 만큼 많이 잡혔던 영광 굴비를 석어라는 이름을 붙여 사위였던 인종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그 맛이 변하지 않는 영광굴비를 진상하면서 ‘비굴’의 글자를 바꾸어 ‘굴비’ 라고 하였다고 한다.

제조

굴비 만드는 법은 토굴 속에 조기 한마리씩을 소금에 절여 3일간 돌로 눌러 놓았다가 물이 빠지면 열마리를 한두름으로 엮어 걸대에 걸어 7∼14일 동안 해풍에 건조시킨다.
돌로 눌렀기 때문에 석수어(石水魚)라고도 하였다. 최근에는 어획량이 적어서, 영광굴비의 전통은 법성포의 약 40가구에 의하여 겨우 명맥만이 유지되고 있다.

특징

조기를 소금에 절여서 말린 것 굴비는 오랫동안 밥상의 밥도둑이라고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먹거리이다.
오직 참조기만으로 굴비를 엮는 영광굴비는 예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으뜸으로 오르는 진상품으로 타지방의 것에 비해 유별나게 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의 영향으로 조기를 말리는데 월등할 뿐만 아니라 1년 이상 간수가 빠진 천일염으로 염장하는 제조기법이 영광굴비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굴비사진